화첩서 뛰쳐나온 혜원·겸재, 디지털 만나다
늦은 밤 술집 앞마당에서 싸움이 벌어졌다. 웃통을 벗어젖힌 선비, 멱살 잡혀 갓이 벗겨진 또 다른 선비를 무예청 별감이 말리고, 푸른 치마 여며 쥔 채 담뱃대를 길게 문 기생은 재미난 구경거리라는 듯 능청스레 웃는다. 달빛 은은한 담벼락엔 선남선녀가 얼굴을 붉히고 섰다. 이제 막 담모퉁이 돌아 나들이를..
2017.11.23 (목)|김윤덕 기자
빌리 홀리데이와 조두순
전설의 재즈 보컬 빌리 홀리데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열세 살, 아버지는 열여섯 살이었다. 지독히 가난했고, 그마저도 아버지는 모녀를 버리고 도망갔다. 허드렛일 하러 가던 집 백인 남성에게 성폭행당한 건 겨우 열 살 때다.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오히려 "네가 유혹했지?" 추궁하며 흑인 소녀를..
2017.11.22 (수)|김윤덕 문화부 차장
어깨 힘 뺀 산수화… 글자, 山과 물이 되다
'죽이도록 주기도문'을 봤을 때의 놀람과 폭소를 기억한다. 먹으로 그린 산수화인 줄 알았더니 주기도문을 반복해 쓴 수만 개 글자의 집합체다. 산과 계곡의 음영을 나타낸 건 먹의 농담이 아니라, 펜으로 깨알같이 적어내려간 글자들의 밀도! 가로 세로 2m 대작이니, 그야말로 '죽도록' 주기도문을 써내려간 작..
2017.11.21 (화)|김윤덕 기자
"DJ·노무현像도 설치했는데, 박정희 동상은 왜 못세우나"
"배곯지 않고 살게 된 게 누구 덕인데, 그깟 동상 하나를 못 세우게 한대요? 세상인심도 참…."15일 경기 일산 인근의 한 주조(鑄造) 공장. 용접 소리 요란한 마당 한쪽에 길게 누운 동상을 지나가며 일꾼 하나가 혀를 찼다. 불도저와 철제물들 사이 을씨년스럽게 놓인 조각상의 주인공은 박정희 전(前) 대..
2017.11.16 (목)|김윤덕 기자
DMZ 철책선에… 김소월 詩로 '평화' 그리다
지난 7일 경기도 파주 DMZ(비무장지대) 군사 철책선에 황금빛 알루미늄 설치물이 걸렸다. 꽃 그림처럼 보이는 폭 34m의 이 작품은 튀니지계 프랑스 작가 엘시드(36)가 아랍어로 쓴 김소월의 시(詩) '못 잊어'다. 소월의 시는 다시 아이들이 그려서 이어붙인 통일 그림 70m와 연결돼 총 100m 폭의..
2017.11.14 (화)|김윤덕 기자
앤디 워홀에게 영감 준 '팝아트 원조'가 왔다
"모든 예술은 평등하다. 기다란 선의 한쪽 끝엔 엘비스가, 반대쪽 끝엔 피카소가 있다. TV는 뉴욕 추상표현주의 못지않게 영향력을 발휘한다."영국 작가 리처드 해밀턴(1922~2011)은 피카소와 엘비스 사이 예술적 위계는 없다고 선언한 팝아트의 창시자다. 전후(戰後) 세계 화단을 지배하던 추상주의에 맞..
2017.11.14 (화)|김윤덕 기자
"가장 아름다운 이름의 賞 받게 돼 기뻐"
"레고 조각으로 산수화를 어떻게 그린다는 건지 너무나 궁금해서 달려왔어요. 실제 보니, 와~ 정말 대단하네요."제29회 이중섭미술상 수상기념전이 개막한 9일,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 미술관은 개막 행사가 열리기 전부터 관람객이 몰려왔다. '디지털 산수화'로 올해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한 황인기(66) 화백의..
2017.11.10 (금)|김윤덕 기자
"사진 찍는다고 옷 몇번씩 갈아입어… 천경자 선생은 소녀 같았죠"
사진작가 이은주(72)가 화가 천경자를 만난 건 1992년이다.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만난 천경자는 사진작가가 온다고 미용실에도 다녀오고 옷도 몇 번씩 갈아입었다.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는 화가에게서 이은주는 외로움을 보았다고 했다. "까다로우실 줄 알았는데 순수하고 꾸밈없는 소녀였죠. 사진계의..
2017.11.08 (수)|김윤덕 기자
물감 던져 난장판 된 14m 화폭에 '금강경'을 쓰다
"전시를 한다는 게 꼭 아기 낳는 여인 같지요. 아들 낳고 싶다고 아들 낳는 게 아니고 딸 낳고 싶다고 딸 낳는 게 아니듯, 전시도 내가 계획한 대로 나오질 않아요. 이제 낳고 보면 딸인지 아들인지 알게 되겠지요, 하하!"9일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미술관에서 개막하는 '제29회 이중섭 미술상 수상 기념전'..
2017.11.07 (화)|김윤덕 기자
'Me too' 열풍보다 감동적인 것
중학교 영어 선생님은 이제 막 가슴이 봉긋 솟기 시작한 제자들과 '스킨십' 하길 좋아했다. "시험 잘 봐!" 격려할 땐 하필 등짝의 브래지어끈 달린 곳을 쓰다듬었고, 성적보다 아이들의 허벅지 굵기를 더 염려했다. 20대 사회 초년병 시절엔 악수할 때 가운뎃손가락으로 손바닥 긁는 '아저씨들' 때문에 짜증이..
2017.11.03 (금)|김윤덕 문화부 차장